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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강단

그 능력의 비밀

설교
김성훈 목사
본문
사도행전 14:1-15

말씀 녹취록

옆에 있는 분들에게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은 축복의 사람입니다. 당신은 전도자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그런 일로 인해 당황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올 수밖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왜 이런 고통이 있는가?”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절대 불가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인간의 한계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다고 할 때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계심을 느끼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느껴집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계심을 느끼고 있습니까?

저는 이번 한 주간 저와 저와 관련된 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보면서 “아,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구나.”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셔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야 합니다.

이런 것을 느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는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초대교회에 모인 많은 사람도 환난과 핍박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계속해서 환난과 핍박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갈수록 문제가 더 많아졌습니다.

예수를 믿고 복음 운동을 하면 모든 것이 형통할 줄 알았는데 계속 핍박과 환난과 문제가 끊임없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환난 속에서도 복음은 멈출 수 없다.”

복음은 절대로 멈출 수 없습니다.

어떤 핍박과 환난이 와도 복음은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문제와 환난과 핍박이 온다고 해도 복음은 계속 선포되고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 운동을 하다가 넘어지고 흔들리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복음은 멈출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계속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 복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와 같은 믿음을 회복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복음은 멈출 수 없다는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은 계속 전해야 합니다.

사람 때문에 시험에 들면 안 됩니다.

사람 때문에 시험에 들었다고 예배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사람 때문에 전도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람 때문에 선교를 내려놓지 마십시오.

문제와 핍박이 온다고 전도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선교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복음을 계속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믿음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제자들의 특징은 어떤 환난 속에서도 모든 것을 뛰어넘고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사람의 힘과 능력이 아닙니다.

사람의 지혜와 힘도 아닙니다.

어떤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능력의 비밀을 발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 번째, 그 능력의 비밀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14장 초반을 보면 두 사도가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많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7절을 보면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계속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루스드라라는 땅에 가게 됩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다는 것은 오래된 문제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이런 일들로 무너지고 고통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바울이 예수 이름을 선포했더니 이 사람이 나았습니다.

8절부터 11절을 보면 바울이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바울은 무엇인가를 보았습니다.

이 사람에게 있는 믿음을 본 것입니다.

9절에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라고 말씀합니다.

전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그 능력을 힘입어 선포하고, 받는 사람도 그렇게 될 것을 믿는 믿음으로 현장에서 만났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오해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능력이 대단하구나. 바나바는 신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15절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나도 여러분과 같이 무기력하고 힘과 능력이 없는 인간에 불과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능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우리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울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우리가 복음 운동을 하면서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위대한 것입니다.

바울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바울에게 역사하신 복음이 위대한 것입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예수 이름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복음 운동을 하다 보면 칭찬을 받을 일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절대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잘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위대한 것입니다.

사람이 나은 것이 내 능력 때문이 아니라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나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전도 운동을 하다가 누명을 쓰기도 합니다.

비방과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비난받을 때 절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비난받을 일도 없습니다.

배가 바다로 나아가니까 풍랑을 만나고 파도도 만나는 것입니다.

배가 바다로 나가지 않으면 그런 일도 없습니다.

배가 바다로 나가지 않으면 늘 조용할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전도 운동을 하고 복음을 전하니까 오해도 받고 비난도 받고 핍박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칭찬을 받든 비난을 받든 우리는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예수 이름을 증거해야 합니다.

저는 선교 현장이나 캠프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많이 보았습니다.

지나고 보면 항상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일들이 복음의 능력 아닙니까?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현장에 제자가 일어나고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을 증거하자 유대인과 헬라인의 허다한 무리가 믿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 흑암이 꺾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이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죽어가던 인생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그 능력의 비밀입니다.

3절을 보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열방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 주를 힘입어 담대히 복음을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선포’는 케리그마라고 합니다.

케리그마는 자신에게 위탁된 메시지를 권위 있게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도는 선포입니다.

전도는 설득이 아니라 선포입니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복음을 선포한 뒤의 결과까지 우리가 책임질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전혀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복음을 선포했는데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까?”라는 것은 우리가 고려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복음의 씨앗을 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복음의 씨앗을 심으면 됩니다.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구원 얻기로 작정된 사람은 다 믿게 되어 있습니다.

믿지 않는다면 아직 하나님의 시간표가 아닌 것입니다.

전혀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를 힘입어 담대히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 능력을 힘입어 담대히 말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도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복음을 전했더니 복음이 드러나는 곳에 치유가 일어나고 우리의 건강도 회복되는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우리의 건강도 좋아지는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루스드라에 있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처럼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받는 일 속에서 우리의 건강이 회복되고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 능력을 힘입는 여러분이 현장에서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우리가 바울을 너무 위대한 사람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바울이 정말 대단한 사람처럼 보입니까?

“이야, 바울은 참 대단하고 부럽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와는 좀 다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당신들과 나는 똑같은 성정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도 당신들처럼 무기력하고 힘이 없고 늘 한계 속에 있는 존재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바울도 한계가 많은 사람입니다.

육신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믿었던 제자들도 바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바울을 사용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4장을 읽어 보면 놀라운 장면이 또 나옵니다.

바울이 핍박을 받았지만 더베로 가서 또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탄의 공격이 얼마나 집요한지 전도자 바울을 돌로 쳤습니다.

바울도 사람이니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 같으면 그런 내적인 갈등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피투성이가 된 상황에서도 다시 그 성에 들어갔습니다.

도망간 것이 아니라 다시 들어가서 그곳의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바울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넘어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입니까?

바울도 우리처럼 넘어질 수 있는 사람이고 흔들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바울을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현장에서 이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면 우리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라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저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사명이고 뭐고 일단 살고 보자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시 들어가 그 사람들을 복음으로 세웠습니다.

어떻게 바울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사명이 있었습니다.

제자를 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제자를 보았기 때문에 다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도 기다리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도 핍박과 환난과 어려움이 계속 찾아옵니다.

어떻게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모르면 우리가 힘들게 이곳에 와서 예배드릴 이유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사용하시는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볼 때 하나님의 취미가 참 이상한 것 같습니다.

능력 있고 잘난 사람만 사용하시면 많은 사람이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산에서 홀로 양을 치던 다윗을 사용하셨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꿈꾸는 것뿐이었던 요셉이라는 아이를 사용하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간 사람이었습니다.

실패하고 살인자가 되어 도망간 모세를 사용하셨습니다.

먼 타국에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무 힘이 없는 여인 에스더를 사용하셨습니다.

다 부족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도 한계가 많은 사람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로마서 7장 24절에서 바울은 육신의 불가능 속에 있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위대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스스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부족하고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더 복음을 의지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환경의 어려움 속에도 있었습니다.

육신도 불가능한데 환경까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빌립보서 4장 12절의 말씀도 그런 내용입니다.

“나는 지금 되는 것도 없고, 비천하고 배고프고, 가족도 없고, 부모님도 없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배경도 좋지 않고, 직장도 변변하지 않고, 배운 것도 없다.”

우리도 이런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내가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결국 환경의 어려움이 바울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 많은 어려움과 불가능한 상황이 오히려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하는 은혜와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한계가 많습니다.

가정의 한계와 경제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건강의 한계도 있고 인간관계의 한계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고 시작할 때 가진 확신을 끝까지 견고하게 붙잡고 가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은 참아야 한다. 인내해야 한다.”라고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억지로 참고 인내만 하다가는 나중에 화병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핍박과 어려움이 와도 내 안에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상황과 환경은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의 모든 흑암과 저주와 재앙을 이기시고 십자가에서 끝내셨습니다. 모든 것을 끝내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내 안에 함께하십니다.”

“주님은 나와 영원히 함께하시고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분이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런 믿음이 여러분에게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와 힘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어떻게 인내하고 우리의 한계 속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와 힘이 없으면 더욱 견디기 어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정신적인 어려움도 계속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견디지 못하고 실패하는 사람이 많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힘이 없으면 안 된다.”라는 절대 불가능을 절대 가능으로 바꾼 인생의 증거를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너 예수 믿는다고 뭐가 있느냐? 뭐가 잘된 것이 있느냐?”라고 물을 때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문제없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십니다. 끝까지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보여 줄 수 있는 증거 있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예수 만난 증거를 가지고 이 땅을 치유하고 모든 인생을 치유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에게는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갈등과 후회가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갈등하는 사람이 가득합니다.

후회하는 사람도 가득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 능력의 역사로 자신이 치유된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나를 치유하고 내 인생을 바꾸었다면 바울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쉬는 날인 일요일에 왜 교회까지 왔습니까?

왜 헌금하고 왜 말씀을 듣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고 여러분의 인생에 치유가 일어난 증거가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온 것 아닙니까?

그래서 바울에게는 한 맺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후회도 없었습니다.

절대로 거기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힘입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으로 자신의 인생이 치유되고 변화된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기적이 필요합니까?

더 이상 어떤 기적이 필요합니까?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힘과 능력입니다.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힘과 능력이 됩니다.

결론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많은 중직자와 제자들은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땀 흘리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은 여러 번 사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뿐인 일생입니다.

딱 한 번 사는 인생입니다.

여러분, 오늘 사도 바울처럼 오직 주를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을 듣고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초대교회 제자들처럼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도 복음을 위해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오늘부터 복음을 위해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인생에 일어난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전도의 삶을 지속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복음 운동, 복음을 전하는 일은 정말 가치 있는 일입니다.

믿습니까?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가치 없는 일이라면 사탄의 역사도 없습니다.

사탄이 목회자와 그 가정과 성도들을 얼마나 공격하는지를 보면서 “아, 복음 운동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중단 없는 전도 운동입니다.

237, 5천 종족 유학생 캠프도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고백하십시오.

“나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복음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붙잡는 믿음입니다.

이 두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복음의 능력을 붙잡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입니다.

이 두 가지를 붙잡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한 주간 그 능력의 비밀을 체험하는 여러분의 현장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힘입고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현장에서 주를 힘입어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성경적인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