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녹취록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이것이 그대로 되어질 줄 믿습니다.
주는 내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십니다.
음부의 권세가 여러분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시며,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심을 믿습니다.
매 순간마다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문제와 가정을 놓고 모든 흑암 권세는 그리스도 이름 앞에서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해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 동안 무엇 때문에 갈망하셨습니까?
저는 지난 한 주간 하나님의 의를 갈망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지난 주에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족하면 갈급 하십니까?
한 주간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너무나도 갈망스러웠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이기에, 복음이 갈망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움을 받았다는 것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믿는 자가 의를 얻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복이며 행복이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우리가 팔복의 흐름을 살펴보는 가운데, 앞의 네 가지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 초점을 두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부터 네 가지를 더 살펴 볼 것인데요,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가진 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소지한 사람입니다.
누구나 전도자가 될 수 있고, 전도에 관심이 많다 해서 전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살리는 자가 되고, 치유가 되는 자가 되기 위해 증인으로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이 네 가지를 여러분에게 각인, 뿌리, 체질되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들이 내 삶 속에 이 복들이 계속 묵상되어지고,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도록 되어지기 바랍니다.
그 긍휼함이 여러분에게 풍성하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긍휼이 무엇입니까?
긍휼이란 단어는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단순히 불쌍해서 돕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긍휼은, 죄인된 인간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입니다.
죄인된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태도를 긍휼하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 용서를 받은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며 자격도 되지 않는데 우리를 긍휼이 여기셔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시편 103편을 보니, 여호와는 긍휼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긍휼하신 하나님의 큰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은혜와 보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기뻐하십니까?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긍휼히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면 하루가 달라집니다.
여러분의 기도로 긍휼하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밤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루 동안 있었던 것을, 긍휼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음을 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가 다른 것을 수용하고 포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긍휼의 은혜를 받는 시간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잘 챙겨주십니다. 삼시세끼 다 먹입니다.
이것과 같이 하루에 세 번 영적인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 119편에, "주의 긍휼이 여기심을 통해 내가 살게 하소서."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신약 성경을 살펴보는 가운데, 여덟가지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궁금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지식도 대단하며, 성경도 잘 외우며 똑똑했으나, 그들은 긍휼함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긍휼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의 특징을 저는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었으며 누구보다 율법을 잘 지키며 살았지만, 그들은 긍휼함이 없었습니다.
긍휼에 절정이 있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어째서 죄인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어째서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영혼 사랑의 긍휼함이 없었습니다.
유대인 처럼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이 긍휼함을 가지고 정말로 이스라엘의 영적 현 주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긍휼함의 마음으로 다가가 그리스도의 참 복을 전달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스스로 한 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많은 사람을 살리고 수용하고 포용할 것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긍휼이 여기실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할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내놓지 않을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옆의 분께 "사랑합니다" 이것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인생을 사셨던 분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은 삶을 살으셨던 분들, 그 분들을 여러분은 사랑하실 수 있습니까?
그 분들을 위해서 헌신하거나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긍휼이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실적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4절에, 긍휼의 왕은 하나님이시라 합니다.
과거들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탄에게 속아 하나님을 방황하며 살아갔으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죽기까지 구원 하셨으나 이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런 사랑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긍휼의 복이 없으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처럼 긍휼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긍휼의 최고의 수혜자는 당신입니다."
여러분 같이 긍휼을 받으신 분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도 나옵니다.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한다고 누가복음 23장에 나옵니다.
어째서 이렇게 하셨을 것인지 궁금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린 것입니다.
그 마음을 참으시기까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용서 못할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어버이주일만 부모를 잘 섬기라고 하기엔 좀 안 좋지만, 지구상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가깝다는 사랑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래도 적어도 이 땅에서 찾아낸다고 했을 때 이 땅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어너머니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체험합니까?
믿음의 싸움을 싸워 가정과 가문을 싸우시기 바랍ㄴ디ㅏ.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있는 그 상황에서도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아픔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멸시를 참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종의 몸을 입고 천한 곳에 오셔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에 대한 사랑, 이 사랑을 어찌 쉽게 생각하겠습니까?
영적 고아같이 우리를 절대로 버려두지 않고 성령으로 함께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이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받은 자가 누구를 긍휼이 여기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눈으로, 복음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어집니다.
복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창세기 1장부터 사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입니다.
창세기 3장 문제로 인해 가문에 흘러 나오는 문제를 통해 답도 모르며, 문제도 모르며 고통 속에 있기만 했습니다.
이 눈을 통해 사람을 살리기 바랍니다.
그냥 하는 것과 집착은 다릅니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 이것이 결국 중독이 되어집니다.
복음의 눈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없습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예뻤지만, 가까이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복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다르게 보일 것 없습니다.
갈급한 상태에서 이 자리까지 노력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분이 이래봐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소망과 인내, 나를 향한 계획과 뜻을 향해 그리스도의 날을 위해 서로를 위해, 서로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살아납니다.
우리의 수준으로는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수준이 아닌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긍휼이 여김을 가진 자, 이를 사실적으로 체험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긍휼이 여깁니다.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은 최고의 수혜자입니다.
우리의 삶에 이 긍휼함이 넘쳐나며, 근원적인 축복을 해결할 수 있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배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이것이 우리의 영적 성장에 도움을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결론으로, 긍휼의 마음은 전도자의 마음입니다.
전도자는 이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다 연약한 존재입니다.
성경에 이 말씀이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깨어지기 쉬운 그릇 같이 여기라'고 했습니다.
쉽게 흔들리는 것이 남자들입니다.
여성 분들, 여러분 보다 약한 남성분들을 불쌍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목사도 질그릇이기에 불쌍히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은혜로 복을 주셨습니다.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살리는 전도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번 한 주간, 긍휼함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며, 정말 복을 받은 사람으로써 많은 사람들, 특히 시급한 곳으로 가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방황하는 자, 하나님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나아가 긍휼함의 복을 체험하며 그리스도의 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게 해 주시고, 복음의 눈과 그리스도의 눈을 가지고 시급한 현장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긍휼함이 넘쳐나도록 해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