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녹취록
오늘 성가대의 찬양을 들으면서, 창세기 31장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본래에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후에 생육하고 번성하며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나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운 인간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한 나라가 되고, 전쟁으로 인해 온갖 우상과 정신 문제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현장의 모습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청년들이 일어서서 언약잡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런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이 들면 저의 병을 고쳐달라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힘들면 돈을 벌게 해달라고, 성공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진짜 병이 무엇입니까?
건강하면 무엇 합니까?
100년 살면 뭐합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좋은 대학과 직장에 가서 성공하여 많은 돈을 벌면 뭐 합니까?
하나님을 모르는데 말입니다.
인간이 밥만 먹고 이 땅에서 살다가 가는 존재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재앙이 왜 덮치는 지도 모르고, 마귀에게 속아 종노릇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와 나의 병을 고쳐달라고 합니다.
우리 자식좀 성공 시켜달라고 간구한다면, 그것이 불순종하고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면 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때로는 문제가 오기도 하고 환란이나 핍박이 옵니까?
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믿는데 우리에게 어째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오거나 아픕니까?
요셉이 아무 잘못도 없이 어느날 노예로 끌려가며, 억울하게 누명쓰고 감옥갑니다.
이때 우리 같아도 왜 제가 노예로 갑니까?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감옥에 들어갔습니까? 이랬을텐데,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실 상 저는 이 목회를 놓았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가만히 돌이켜보니 제가 잘못 살았다는 것, 잘못한 것이 있다는 것, 내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는가, 이것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의 남은 생애가 정말 진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제가 어제 작은 체험을 했습니다.
정수기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정수기가 만료되어 바꾸어야 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40대 초반인데, 예수 믿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다고 하고 옥천 장로교회에 다닌다 했습니다.
자식은 8살이고, 결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혼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확신이냐 했더니, 이후 거기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현장에서 여러분이 만난 사람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것은 25시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 땅에서 잘 사느냐 못 사느냐가 아니라, 여러분을 통해서 현장의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과 힘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라면, 하나님이 전능하신 여호와시라면,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모든 문제 해결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나의 능력은 아무런 상관이 없고, 모든 문제의 끝이라고 하며 우리는 수시로 주님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지만 실제로 문제나 위기가 왔을 때 내가 가진 것과 하나님이 가진 것은 상관이 없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단순히 나의 목적은 성공이며 떡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맞습니까?
이게 하나님과 맞는 겁니까? 아니거든요.
우리가 큰 일이나 위대한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위대한 일을 해라, 큰 일을 해내라, 너희의 모든 것을 바쳐라 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뭣하러 아침부터 저녁까지 현장에서 일을 합니까?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합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이렇게 살다가 갈 것입니까?
우리의 삶이 앞으로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호랩산 체험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감람산, 마가다락방의 체험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종교인은 그냥 교회 다니는 것입니다.
종교인은 소원 성취입니다.
우리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지, 종교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종교인은 어려움 없게 해 주세요,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인에게 임하는 문제는 단순한 모든 문제입니다.
전부 문제입니다. 이것이 저주의 징조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여러분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맞다면, 여러분에게 임하는 모든 어려움이나 위기, 갈등이나 환란은 모두 기회입니다.
계속 이것이 찌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간질이라고도 하고,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네게 머물게 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괴롭히기 위해서, 골탕 먹이기 위해서 그런 어려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야 꺾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힘으로써는 흑암을 꺾을 수 없습니다.
현장의 힘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도록, 하나님만을 바라보도록 자기 자신의 배경을 의지 하지 않고 하나님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이용하여 시험했습니다.
제 아들, 주의 종입니다. 제 아들이 아팠을 때 어떤 전도사님이 창세기 22장 이야기를 하며 언약을 심으려고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그 전도사님이 말해주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을까?
왜 하나님은 사브락, 메삭, 아벳느고를 통해 왜 사자굴과 풀무불 속으로 들어가게끔 했을까?
우리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시험 뿐만 아니라 마귀의 시험도 임합니다.
이 문제에 사탄의 간섭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죄 지어서 그렇다고 계속 불신앙을 심습니다. 이렇게 근심하다가 거기에 빠져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 가운데에서도 아주 긍적적이면서 운동하는 등 긍적적 사고를 통해 해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시는구나, 하나님은 정말로 전능하시는구나를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되지 않습니까
어느날 죽었는데 지옥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이 땅의 인구가 하나님이 없다고 소리질러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인간의 생과 사와 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불신앙 할 수도 있으며, 좌절할 수도 있고, 사탄에게 걸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테스트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열방 선교교회의 모든 성도분들은, 하나님의 테스트를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과하면, 마귀가 여러분을 포기합니다.
조금만 어려우면 하나님께 대들거나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대들고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윗은요, 여호와는 나의 힘이며 나의 피난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우상에게 절하면 풀무불에게 안 들어가도 됩니다. 그러나 우상에 전혀 절 하지 않아서 들어가게 되어버렸습니다.
주신자도 여호와고, 해하진 자도 여호와이십니다.
누가 여러분 이런 신앙을 절박한 순간에 할 수 있겠습니까?
사탄이 바로 포기한 것입니다.
저는 성경과 창세기를 많이 강의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그렇게 부족하고 실수가 많은데도 끝까지 야곱을 축복하셨습니다.
언약 가진 사람에겐 하나님꼐선 끝까지 함께하십니다.
아무런 이름도 없는 아프라함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가 바로 의식주입니다.
아브라함이 두 번이나 실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되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야곱의 약속과는 다른 약속이 되어버렸습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하고 할렐루야 했겠습니까?
오늘 창세기 22장이 이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해 하신 것입니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앗 땅으로 가서 내가 말한 땅,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서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려라.'
인간의 생각으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릴 때 내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은 받아드리지 않고, 내 생각으로 마음대로 판단할 것입니까?
아들을 얻어 할렐루야 했는데, 어째서 이를 번제로 드리냐고 한탄하거나 궁금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여기에 어떠한 토달지 않고 그래도 따랐습니다.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준 곳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갔습니다.
언제 여러분은 아침 일찍 일어납니까? 좋은 일 있을 때 일어납니다. 소풍가거나 어디 재밌는 곳 떠날 때 일찍 일어나는데, 아브라함은 늦잠 잔 것도 아니고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내에게 말하지 않고 집을 나섰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때로는 혼자입니다.
아내는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동행한 자는 종들이었습니다.
산 밑에 있었을 때에 종들에게 여기 있으라고 했습니다. 종은 여기에 두고 갔습니다.
만약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 미쳤냐며 자식을 바칠 수 있냐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산 밑에 두고 아브라함과 이삭만 산을 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이 하나님으로 나아가는데 장애물이나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올라가며, 아들 이삭이 묻습니다. 나무와 불, 칼도 있는데 제물은 어디 있냐고 묻습니다.
"제물은 하나님이 준비하셨을 것이다."
그러면서, 5절을 보면 모두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라고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삭과 같이 돌아올 수 있으리라고.
성령 충만 받고 자식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통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이른 땅에 올라 그 아들을 제단에 올려 아들을 잡으려 하니,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아들을 결박하여 칼을 들고 아들을 찌르려 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급하게 불렀습니다.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 너의 아들까지도 내게 바치는 것에 아깝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이 가져 가시면 이 세상에 가진 여러분의 것은 모두 쓸모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게 경외함을 아노라."
내게 저주 받거나 멸망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어주셨습니다.
구원 받지 못하는 자들은, 진노의 자식들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더라도 구원 받지 못하면 모두 진노의 자식입니다.
그냥 여러분, 보고 있을 것입니까?
요한복음 1장 29절을 보면,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세상을 짊어지고 가는 것을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십자가 상에서 모두 짊어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게 큰 복을 주고, 너의 씨가 이 대지에 크게 차지하리라.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했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세계 복음화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계 복음화와 전혀 상관이 없다면, 저희 교회는 필요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말헀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아들인 이삭에게 언약을 전하는 것이 너의 목적이라 전했습니다.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언약의 사람이다.", "나는 세계복음화에 쓰임 받을 사람이다."
우리가 아무리 힘을 합쳐도 세계 복음화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복음 24시를 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절대 계획은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자녀에게 언약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분, 자식 사랑해도 자식의 운명을 바꾸지 못하면 자식은 마귀 자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언약을 붙잡고 시험을 통과하여 한 시대에 쓰임 받는 주의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녀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