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녹취록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형편, 처지, 그리고 어떤 것 때문에 힘들어하고 답답해 하는지 다 아십니다.
오늘 예배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새 힘을 받으시고, 여러분의 질병도 나아지길 바랍니다.
우리가 팔복이란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영적인 갈급함이란 말인, 심령의 가난한 자에 대한 말씀을 받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천국을 맛보는 인생이 되어지는 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의 삶이며, 그 사람이 애통한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애통이 단순하게 육신적인 슬픔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눈물, 애통한 심정과 전도자의 심정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에,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했습니다.
성경에는 말하는 것과 다르게 해석되는 말이 많습니다.
'온유'는 사전적으로 따뜻한 성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듣기만 하면, 부드럽다, 따뜻하다라는 느낌을 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하는 온유함은 이런 온유함이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은 온유함의 대명사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도 온유하게 되었으니, 제자들도 온유하게 되었으면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본인이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 하셨습니다.
바리세인을 보며, 독사의 자녀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성전에서, 장사하는 장면을 보며 상을 엎고 화를 내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는, 이런 세상에서 말한 온유가 아닙니다.
민수기 12장 3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 보다 모세의 온유함이 최고로 온유함이라 표현했습니다.
모세는 10개명을 내던지고, 일반적인 개념으로 판단할 수 없는 온유함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성격이 착하고 따뜻하고 말을 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한 온유함이 무엇인지, 땅을 기업으로 준 것인지 무엇인지, 일반적인 개념과 차원이 다른 영적인 의미를 꼭 오늘 말씀을 통해 확인하시고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을 보면, 사람의 6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9가지 열매입니다.
온유라는 것은, 성경의 열매로 말미암아, 성경이 주는 성품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온유한 성품입니다.
진짜 재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온유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세 가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온유함의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이 세 가지를 깨달으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한, 겸손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온유한 성품을 어떻게 만들 수가 있는지, 진짜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가는 온유한 성품이 무엇인지 깨닫길 바랍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임을 내가 믿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믿어지고 깨달아지면, 하나님 앞에서 온유해지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구원을 생각할 때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데, 살아서 숨을 쉬는 것 같이 주관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잘난척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것도, 내가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생각만 고집할 수 없습니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내 주장, 생각, 갈등한 것들, 후회한 것들, 이것들이 어느 순간 부터 사라졌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하나님을 믿었더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때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오늘날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의 지혜와 깨달음 덕분에 되어진 줄 아셨습니까?
내가 성격이 너무 좋아 나의 인내인줄 아셨습니까?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지금 기분 나쁘다고, 내가 자존심 상했다고, 나를 무시했다고,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뭐가 맘에 그렇게 안 드시는 것이 많습니까?
아직도 우리는 창세기 3장에 살아가고 있는 듯 합니다.
아직도 창세기 3장이 살아있구나를 알게 되어집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믿을 때 만들어집니다.
이런 온유한 성품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끝없는 사랑을 생각할 수록 사람이 온유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다 참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얼마전에 가시를 찔렸는데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온갖 멸시과 조롱을 받으시며 가시 면류관까지 쓰시며 창으로 허리가 찔려 모든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길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까?
여러분은 이 엄청난 사랑, 끝없는 사랑을 받은 분입니다.
의인을 위해 죽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인이었을 때, 살인범과 강간범이 20년과 30년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갔는데, 아무리 여러분이 그 사람과 친하다고 20년과 30년 감옥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내 주장과 생각을 펼칩니까?
그 완전한 사랑이 우리에게 와 있는 줄 믿습니다.
이 땅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영적 고아와 같이 방치해두시지 않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알 수 없는 평안함을 우리에게 주신다 하셨습니다.
천국 배경과 보좌의 축복이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 했습니다.
집에 가서 요한복음 14장을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수 만번이나 버려져야 할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다 할 수 있습니까?
조건 없는 완전한 사랑을 우리는 받았습니다.
끝없는 사랑, 그 사랑, 그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도록 해주심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앞에서 온유한 성품이 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로, 진리의 영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생명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이를 깨닫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헬라어로 '프라우스'라고 합니다.
야생이란 말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야생의 말은, 주인의 통제를 받아 주인에게 길들여져야 합니다.
이런 개념이 영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주인되신 예수님과 하나님 앞에 온전히 기대져 있는 상태를 온유하다 합니다.
내 야망, 성공, 동기, 상식,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살아가는 사람을 온유한 자라고 합니다.
말씀에 사로잡히면, 온유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에 사로잡힌 자, 말씀을 붙잡은 자와 말씀에게 붙잡힌 자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들어야만 하는 체질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온유한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시간입니다.
계속 말씀을 붙잡고 일주일을 살아갑니다.
계속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붙잡는 수준을 넘어 말씀에 사로잡히게 되어집니다.
사도행전 18장 5절에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는 그리스도라 증언했다 적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을 보니, 예배때 어떤 말씀을 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얻습니다.
온유한 자는 예배의 뜰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으로 받는 자가 온유한 성품으로 간다는 의미입니다.
진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 했습니다.
그 말씀을 계속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온유한 자 안에 들어가기 위해선 말씀 묵상이 필요합니다.
말씀 묵상하는 자가 온유한 자입니다.
듣기만 하지 마시고, 그 말씀을 정말 여러분의 말씀으로 만드시고, 증인의 말씀으로 가지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진짜 이 영원하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잡고 이 말씀이 계속 성취되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온유한 성품으로 가게 되어집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계획이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시는 것, 나의 가정과 교회와 현장에 원하시는 것이 보여집니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아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계속 묵상하게 되면, 이 말씀을 듣게 되면, 오직 예수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각인, 뿌리, 체질되어지는 삶, 온유한 성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모든 문제를 온유한 성품이 가진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금까진 내 생각으로 살았더라면, 이제부터 말씀을 통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옆의 분을 보며 나보다 낫다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계속 온유하다 말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개념과 다릅니다.
일반적인 개념의 온유한 성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인간이 만들어 낸 꾸며낸 성품이 아닌, 성령으로 이뤄진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온유해지면 사람이 겸손해지게 됩니다.
이것이 믿어지니 내 주장을 펼칠 수가 없습니다. 저절로 내 주장이 내려집니다.
교회가 각자 자기 주장을 펼치고 있을 때 어떻게 우리가 전도 운동과 세계 운동을 합니까?
그래서 온유한 성품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 온유한 성품이 없으니 한국 교회는 다투기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모든 성도들을 품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지고 있습니다.
감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진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우리는 전도 운동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유한 성품을 믿어야 할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을, 옆의 성도를 나보다 더 낫다 생각하시고, 사랑하시고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이 없으면, 전도 선교와 세계복음화 할 수 없습니다.
결론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되어지는 의미는, 현장이 살아나고 가정이 살아나고 직장이 살아난다는 의미입니다.
이 온유한 성품을 가지고 교회와 지역과 현장을 살리길 바랍니다.
시편 37편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온유한 자는 풍성한 화평이 있다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화평한 삶이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내가 화평한 삶을 살게 되면, 다른 사람이 그 화평한 삶을 보게 되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이 붙게 됩니다.
참된 행복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온유한 자의 대한 성품을 받게 되었습니다.
온유한 성품을 모든 성도에게 허락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진 자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참된 전도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