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녹취록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함께하십니다.
당신은 전도자입니다.
당신은 남은자입니다.
세상은 웃는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이런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웃으면 복이 와요"
별로 웃을 일이 없어도, 자꾸 웃을 일이 생긴다는 것이죠.
과거에 많은 종교에서 마음껏 웃고 기뻐하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런 말씀들로 하다 보니 영적으로 무지하고, 영적으로 좋지 못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렇게 설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웃겨야 교회가 구원 받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과 반대입니다.
세상은 웃으면 복이 온다 하지만, 성경은 울으라고 합니다. 성경에선 우는 것이 복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선 웃었다는 말은 없는데, 우신 적은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는 것은 슬픔이 아닙니다.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큰 아픔을 말합니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과 그 고통을 말합니다.
그런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애통은, 세상의 슬픔과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웃거나 울거나 하는 애통이 아닌, 영적 애통입니다.
그러니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영적인 애통은 복이라는 것입니다.
무거운 이야기로 생각될 수 있겠지만, 전혀 아닙니다.
애통함이 축복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애통함이 축복입니다.
그렇게 느껴져야 여러분이 전도자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구원 받은 성도라면, 애통함이 축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와 제자들과 이야기한 것이 나옵니다.
누군가는 아주 많은 성공을 이루었다 하고, 누군가는 말씀을 잘 지키고 율법을 잘 지킨다 합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님 앞에 나온 사람은,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애통함은 단순히 힘들어서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세가지의 애통함을 꼭 기억하시고, 계속 생각하시고, 이 애통함 속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필요한 애통함의 복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중학교에 갔다 가정합시다.
등교하다 사기꾼을 만났습니다. 그 사기꾼을 따라간 아이는 어떻게 될까요?
그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기꾼을 따라간 아이는, 외로움이 당연합니다.
부모를 떠난 아이는 외로운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외로운 것이 복이기도 합니다.
돌아가고 싶은 것이 당연합니다. 부모를 떠난 아이는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그 아이가 사기꾼이 주는 밥이나 사기꾼이 사주는 옷이 너무 좋았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외로운 것과 힘든 것, 문제와 사건이 터진 것이 복이며 축복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의 애통함의 복은, 하나님 떠난 자의 애통함의 복입니다.
제가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김창옥씨가 사람들을 따뜻한 말을 해주고, 나름대로 답을 주며 치유해준다고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기분이 좋고 흐뭇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따뜻한 위로가 우리의 하나님 떠난 영을 살리지는 못합니다.
지옥 운명 배경을 살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위로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참된 위로도 필요합니다.
애통한 자에게 복이 있으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십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해주신 위로입니다.
참아라, 견뎌라, 버텨라는 말은 위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임마누엘의 축복이 우리에게 최고의 위로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보혜사 성령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로도 사람이 주는 위로가 아닌 성령의 위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위로는 일시적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의 보내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참된 위로를 맛보기 위해서는 불신자는 실패하거나 망해야 합니다.
아직도 자신에게 희망이 있다 생각하기에 불가능합니다.
나는 불가능하다, 완전히 절망하는 나에게 하나님이 준비하신 희망을 주십니다.
그 절망까지 가는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래서 축복이고, 복이라고 말합니다.
망하는 것 자체가 복은 아니지만, 망해서라도 만나야 할 만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만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 절규에 가까운 애통함의 복인 줄 믿습니다.
영원한 축복이자 복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힘을 얻지만, 밖에서 죽어가는 현장을 보아야 합니다.
영적 문제에 시달린 사람들을 보며, 주님의 애통함과 눈물을 회복해야 합니다.
영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뉴스를 보았습니다.
강아지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이를 물고 사람에게 대려갔다 합니다.
사람이 개보다 수준이 낮은건지, 개가 수준이 높은 것인진 모르겠지만, 생활, 가정, 병,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망가져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신자에게 필요한 애통함입니다.
우리에게도 애통함이 필요합니다.
참된 복음과 그리스도를 모르고 신앙생활과 종교생활 한 적 있지 않습니까?
그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말씀으로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 문제 모두 하나님께서 끝내주셨습니다.
큰 믿음과 확신이 생겼지 않습니까?
신자가 자신을 향한 애통함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나에 대한 애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 대한 애통함이 있습니까?
복음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습니까?
정확한 복음을 붙잡아야 할 줄 믿습니다.
죽는 날까지 애통함을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끝까지 애통함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해주셔서 의인이 된 것이지, 우리가 의인의 상태가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태는 아직 죄인입니다.
계속 죄인이라 몰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나는 작은 자보다 작은자다, 나는 죄수 중에 죄수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계속 죄의 법으로 끌려간다 말했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복으로 완전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의 영적인 상태는 아직 죄인의 상태입니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 없으면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애통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린 오늘도 복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가 드러나지 않습니까?
완전하시죠?
저는 저의 죄가 드러납니다.
생각으로도 죄를 짓고, 말과 행동으로도 죄를 많이 짓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것 같지만,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죄 지음이 나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제가 율법적인 사람인줄 몰랐습니다.
요한일서 1장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죄 없다 함은 거짓말입니다.
우린 구원을 받았지만,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그리스도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오늘 나에게 새 은혜를 달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 나에 대한 애통함을 동시에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람들은 웃음이 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사람은 웃음이 있는 것을 찾습니다.
누가 옆에서 웃어주면 얼마나 기분이 좋고 기쁩니까?
눈물이 시대를 살립니다.
햇빛만 있는 곳에는 사망만 있다 합니다.
비가 와야 합니다.
요즈음 눈물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애통함의 심령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주신 애통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안된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애통함입니다.
이 연약함, 나약함, 무능, 제자들도 계속 주님을 부인하고 말씀 붙잡지 않고, 영적 잠을 자다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망합니다.
계속 복음 뿌리 체질, 영적 싸움, 전도자의 삶, 갱신, 오늘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과 애통함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교회에 대한 애통함입니다.
예루사렘 성전에서 예수님께서 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주님의 눈물이 가슴에서 회복되어지길 바랍니다.
복음을 전달해야 하는 교회가 복음을 전달하지 못해 폭력과 자살 등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영원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애통함이 사라진 곳에 전도자의 마음으로 눈물을 흘려야 할 줄 믿습니다.
애통함이 없는 자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ㅣ
말로는 세상을 구원한다 하고, 말로는 교회를 살린다 하지만 애통함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후대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애통함이 없다면, 그 사람은 전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후대들이 우리의 기도의 눈물을 먹고 따라옵니다.
한국 교회가 많이 성장하는데에 있어 많은 장로님과 권사님의 기도의 눈물이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 기도의 눈물이 절대로 헛됨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현장을 나아가 거룩한 애통의 눈물을 회복되어지길 바랍니다.
사탄은 틈만 나면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한국이 위기입니다. 교회가 모이는 것을 핍박하고, 모일때 성령이 임하지 않습니까?
모일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회는 한 명씩 떨어져 나가게 되면, 없어집니다.
성령의 불이 꺼지게 됩니다.
교회는 모여야 하는 곳입니다.
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역사합니다.
우리가 모일 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마귀는 전도와 선교를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교회의 본질은 전도와 선교만 잘 하면 됩니다.
우리끼리 잘 놀아보세 하는 유람선입니까?
아니면 영적 싸움을 하는 군함입니까?
교회는 전함입니다.
어제도 제가 한 가정에 가서 신방을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요즈음 누가 작은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눈이 삐었나, 왜 우리 교회에 붙어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오직 복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붙어만 계십시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잘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결론입니다.
현장을 향한 애통함과, 자신에 대한 애통함을 가진 신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교회를 향한 애통함을 가진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치유의 역사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핍박할수록 분명한 제자가 있고,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깨어 눈물의 기도를 해야할 줄 믿습니다.
참된 애통함의 역사가 가정과 가문에 있음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 교우들을 축복할 줄 믿습니다.
당신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애통함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천국이 여러분의 것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갈급함을 가졌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나라를 향한 애통함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애통한 자가 복이 있다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위로 덕분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민족과 나라, 후대를 위해 기도하는 애통하는 기도가 되어지도록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